안녕하세요 커피썸 커피노트입니다. 오늘은 태양왕 루이14세와 터키열풍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역사속에서 찾아보는 커피 이야기를 포스팅하는 것으로 커피에 관련된 재미있는 역사들을 꾸준히 올리고있습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14세기 태양왕 루이 14세와 터키열풍, 런던의 홍차 파리는 커피!

일반적인 문화로 런던의홍차, 파리의 커피 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커피가 1615년 유럽에 상륙하고 터키에서 동방무역의 중심지 베네치아로 수입되었습니다. 그 이후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1652년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지만 인도를 개발하고 식민지에서 차茶의 수급이 원할했던 영국은 커피보다 차茶 문화가 먼저 보편화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파리에 처음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던 것은 언제였을까요? 1669년입니다. 런던보다 10년이상이 늦습니다. 그렇다면 홍차는 어떠할까요? 홍차가 처음 프랑스에 들어오게된것은 1636년, 영국은 1650년으로 차茶의 역사는 프랑스가 훨씬 깊고 오래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역사속에서 찾아본 두 나라의 홍차, 커피의 전파 이야기 지금부터 포스팅합니다.



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태양왕 루이 14세와 아름다운 정원, 건축물이 훌륭한 베르샤유 궁정, 멋지고 화려한 축제가 있는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가장 기독교적인 왕'이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1669년 투르크동맹이라는 상당히 껄끄라운 문제를 다루기 위해 투르크(터키)대사 '슬레이만 아가'를 한해 동안 파리에 머물게 했었는데, 바로 이시기에 커피가 포도주와 나란히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마시고 즐기는 문화로 성장하게 됩니다. 



슐레이만은 고국에서 많은 양의 커피를 가져와 자신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터키식으로 끓인 커피를 대접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작가 아이작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커피와 더불어 다기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는데 상류층 여인들은 이러한 화려한 부분에 더욱더 커피에 빠져들었고 아름다운 자기 찻잔에 금으로 둘레를 두른 냅킨을 앞에 두고 쿠션에 기대고 앉아 무릎 꿇은 터키 노예들에게 커피 시중을 받는 귀부인들의 모습을 파리 여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파리의 상류사회에 터키열풍이 일어 크게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슐레이만 대사는 자신의 집에 오는 고위층 부인들에게 경계심을 풀게하고 자신의 많은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게 했고 궁정의 정황을 전해 들을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정리하게 되는데 루이 14세는 투르크와의 동맹은 프랑스 자국의 변방에 적국인 독일에게 위협이 될만한 악귀를 하나 붙이자는 것으로 향후 비엔나를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우너군을 보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몇 년후 1683년에 투르크는 비엔나 근처에서 전투하게 되었으나 오스트리아 국민 중 폴란드 출신 게오르그 콜시츠키라는 사람의 활약으로 투르크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우군과의 연락에 성공할수 있었고 그의 덕분에 로렌공국과 폴란드 연합군이 빈에 달려와 투르크군은 전투에 패하고 퇴각하게 됩니다.



슐레이만 대사의 판단대로 루이 14세는 예상대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독일 역사가 랑케는 루이 14세가 투르크의 반대편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의 상황은 투르크군이 라인강 주변국을 점령했을때 즈음 군대를 출정하여 전 기독교국과 독일의 구세주로 나설수 있을것이고 그러면 신성로마제국의 왕관을 확보할수 있을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루이왕의 기대와 달리 투르크 발칸으로 돌아가고 그 대신에 '이슬람의와인'인 커피는 비엔나와 파리에 안전히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역사 속에서 찾아보는 프랑스에 커피가 정착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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