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커피썸 커피노트입니다. 오늘은 보스턴에서 일어난 차 사건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홍차전쟁이 있었던 서양 역사 이야기입니다. 보스턴 차 사건을 이후로 커피가 산업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알고 넘어가면 좋은 내용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차(茶)가 판매된 후 궁정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도 차(茶)는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茶)가 들어오기 시작한 18세기에는 그 수요가 점차 증대되어갔다. 이 시기에 영국 차(茶)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은 토머스 트와이닝(Thomas Twining)이다. 그는 1701년 런던의 동인도회사의 상인 밑에서 일하다가 1706년 '톰의 커피하우스'를 열었고 고객은 다양하게도 상류 계급은 물론 학생, 변호사, 성직자 등이 모여, 커피 차(茶)를 함께하며 토론을 즐겼다.



이와 더불어 영국정부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차(茶) 보급에 적극적이었고, 비례하여 홍차의 판매 비율은 크게 증대하게 되었다. 더불어 영국인의 해외 진출과 함께 홍차도 세계각지에 전파되었으며, 이 시기에 트와이닝사(3대 사장 리처드트와이닝)가 감당하기가 어려워 감세를 주정하고 있던 상황에 결국 차에 대한 세금이 미국에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을 알린 일화중 하나이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신대륙에서 처음 차(茶)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뉴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에 의해서이다. 1664년 영국이 이땅을 빼앗아 도시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고, 이 때부터 홍차는 미국 상류사회에 친근한 음료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신대륙 미국에도 차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동인도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중국에서 차를 밀수입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영국의회는 1773년 동인도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에 차를 팔 때 동인도회사에 독점적인 판매권을 부여하고 관세를 없애 밀수입업자들보다 싼 가격에 차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차(茶) 조령'을 발표했다.



올드하우스 집회소 

차(茶) 조령을 발표한 후 미국 내 차 밀수입업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결국 이에 대항하여 미국에서는 차(茶) 상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1773년 12월 미국인들의 반대 집회를 무시하고 차(茶)를 실은 동인도회사의 배 3척이 보스턴 항에 입항하자 '새뮤얼애덤스'가 거느리는 50여명의 주민들은 아메리카 인디안으로 변장하고 배에 뛰어올라 342상자의 차(茶)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유명한 보스턴 차(茶)사건(Boston Tea Party)이다. 이에 즉각 영국은 변상을 요구하며 보스턴 군대를 주둔했지만 미국은 1773년 대륙회의를 열어 영국에 대립했으며 이는 마침내 1775년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의 꿈이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면 카페는 그 동력을 만드는 현장이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애국적인 행동으로 비춰졌고 차(茶)를 마시는 것은 미국인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 커피의 존재는 신세계에서 그 어떤 음료도 넘볼수 없는 지위에 올랐다.



일례로 1789년 새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이 뉴욕에 왔을 때 뉴욕 주지사와 사장이 주최한 환영행사가 열린곳이 그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머천츠커피하우스'였다. '머천츠커피하우스'는 오늘날 월스트리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현재 전미커피협회(National Coffee Association)본부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스턴 차 사건 이야기는 미국 전쟁이 발발하게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었고, 커피가 부흥되기 시작한 가장 큰 사건중에 하나 였습니다. 역사를 통한 커피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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